편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Stage2 2023. 11. 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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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 한고객과 미팅이 있었다.

새로운 가격정책에 대한 설명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하여 해당팀 전체 인원을 

대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몰리고

갑자기 내 몸안에서 이상한 전율이

느껴지고 머리속이 하얗게 되었다.

또 다시 그 님이 찾아온것이다.

목소리가 떨리고 말이 제대로 되지 않고

어찌할줄 몰라 당황해 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내 앞에 있던 팀장께서 뭐가 그렇게

떨릴게 있느냐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나의 수행불안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정말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두가 나를 비웃고 있는느낌이 들었다.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갑자기 준비해온

요약본 메일은 치우고 준비해온 슬라이드를 

가지고 차근차근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약 몇분의 시간이 지나고 슬라이드의

내용들이 눈에 들어오고 내가 해야할 말들에

대한 어휘들이 머리속에 입력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상적인 모드로 바뀌면서

호흡이 돌아오고 시선도 고객을 향해 찬찬히

향하게 되면서 나의 페이스를 찾았다.

 

다행이 모든 내용은 나름 잘 전달되었고

모든 의문점을 풀어드리고 미팅의 목적은

어느정도 달성할수 있었다.

 

미팅이 끝날때 마무리하면서 회의 초반 제가

정신이 나가고 맨붕이 와서 미팅이 잘못될뻔

했다고 양해를 구했다.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다시 살아나 끝까지

내가 하고자 한 내용을 다 전달할수 있었다는

것에 나에게 칭찬을 해주고 감사할 따름이다.

 

예전같으면 한번 무너지고 그냥 꼬끄러 졌을텐데 말이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나의 내공이 그래도 축적이 된 결과라

할수 있다면 그렇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같이 동행한 동료 여직원에게도 나의 모습이

무척 생경하고 안타깝게 보였으리라.

하지만 고객 방문을 나오면서 대수롭지 않게

나의 실수에 대한 안타까움만 표하는 태도에

나도 그냥 가볍게 실수가 있었다는 것으로 

대꾸하며 그 순간이 지나갔다.

 

2.

그런데 이후 자꾸만 어제 회의초반 실수했던

장면이 머리속을 떠나질 않고 있다.

분명 내가 도덕적 사회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진

것은 아니지만 나의 수행불안으로 인한 나의

치부가 까발려진듯한 느낌이 들어서 나 자신이

너무 밉고 싫고 정말 자살의 충동까지 느껴졌다.

 

하루종일 나의 머리속은 어제 실수의 생각들로

누군가 나를 비웃고 있을 타인을 생각하며 괴로운

신음을 홀로 삭이고 있었다.

그 수치스런 순간이 떠오를땐 자꾸만 입에서 뭔가

이상한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곤 한다.

집에와서 그런 갑작스런 굉음을 내는 소리를 듣고

아내와 아들은 무슨일이냐며 걱정스런 질문을 한다.

이러다 거의 "틱" 수준으로 발전될까 두렵다.

 

한편 가만히 생각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냥 업질러진 물이라 다시 담을 수는 없지만

잘 수습을 하고 새로운 물을 컵에 담아 마실수

있도록 내가 할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된다.

 

한편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왜 이런 시련이

약 8년전 유사한 사건이 있은 후 다시 이렇게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다른 잡생각들로 인해 힘들어하는

나의 번잡하고 어질어진 마음을 어제 벌어진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정리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게 되었다.

 

어쨌든 이를 통해 다시 한번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배워야하고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음을 알았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그 의미를 부여하기에

나또한 이번 사건을 내 나름의 시각으로 풀어보고 싶다.

 

3.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동안 내가 너무 아내를 존중하지 못하고

기고만장하며 일방적인 요구만을 해온것에 

대한 대가로서 일어난것이다.

스스로가 무너지고 나니 기댈곳이 아내이고

우리 가족임을 깨달았다.

 

또한 내직장의 동료와의 관계에 있어서

비록 나보다 어린 연배이지만 상사인

그가 아주 소중한 삶의 부분임을 알고

그와의 관계를 더 편안하게 생각할수

있게 되었다.

 

그러기에 이를 계기로 다시금 다짐한다.

 

- 내가 잘나서 잘나가는게 아님을 알고

항상 겸손하게 나를 낮추는 삶을 살자.

 

- 어떤 업무나 회의나 일이든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연습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자.

 

- 다시금 내가 이곳에 입사할때의 그 느낌으로

기본에 충실하며 내가 하고 있는 회사 업무에

더 기본기를 다지며 열의를 가지고 일하는

삶을 살아가자.

 

- 모든것이 무너져도 나의 존재감과 효능감을 유지하자

 

- 타인은 신경쓰지 말고 나에 집중하자.

 

- 기본으로 돌아가 모든것을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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