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텐트에 얽힌 추억

Stage2 2013. 5. 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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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찍 집을 나서서 신평 지하철 역사를 들어가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텐트를 사서 가족과 함께 자연속에서 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난 주말 철마에 주말농장을 다녀오면서 낭동강 주변 도로를 운전하며 창밖에 텐트족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이 축적되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 나온것이기도 하다.

 

텐트가 생각날 때면 항상 떠오르는 것이 있다.

지금 우리 아이보다 내가 더 어린 나이일때 초등학교 2학년 쯤 때였을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부모님께서는 강원도에서 부산으로 내려오신지 얼마되지 않은 터라 삶의 터전을 세우기 위해 그리고 우리 삼형제를 입히고 먹이고 공부시키기 위해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 때였다.

 

1979년 처음 부산에 내려오신 부모님께서는 아버지는 시내버스 운전을 하시고 어머니는 주변 구두공장으로 부터 신발 가죽을 받아와서 바늘과 실로 그 가죽을 꿰매고 덧대는 일을 하시며 1장당 일정한 돈을 받으시는 일을 하셨다. 어머니는 그 이후에도 돈되는 일이라면 식당과 포장마차 그리고 인근 밭등을 오가시며 닥치는되로 돈을 버셨던 일들이 떠오른다.

 

요즘도 TV에서 '인간극장'이나 '동행'이라 프로그램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들의 삶을 방영할 때 그들의 생계수단의 하나로 소개되기도 한 것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삶은 크게 달라진것은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지 그런 삶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작지만 핵심적인 교훈을 얻곤 한다.

 

그 당시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 직원분들과 그 가족들은 대부분 우리와 비슷한 경제적 상황이었고 부모들이나 아이들의 나이도 비슷해서 자주는 아니지만 같이 어울리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여름 무렵 단체로 8식구가 근교의 계곡으로 하루정도 피크닉을 간 적이 있었다.

 

개울이 있는 근처에 다른 집들은 다 텐트를 치고 본인들의 아지트를 만들어 놓았지만 우리집은 텐트가 없어서 동생들과 나는 이 텐트, 저 텐트를 기웃거리며 그냥 바라보며 부러워만 했던 기억이 난다. 작년 엄마집에서 그 당시 놀러갔다가 또래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뭔가를 먹고 있는 내 뒷모습만 찍힌 사진을 보고는 아주 귀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잠시 옛 추억에 젖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여름에서야 우리집은 텐트를 가지고 여행을 갈수 있었다. 동해에 있는 솔개해수욕장에서 아버지 친구분들 가족과 함께 신나게 뛰어놀고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추억은 현재 사진한장 없지만 아직도 나의 깊은 심연과 내면에 소중한 경험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힘들때 마다 꺼내서 나에게 힘을 주는 힐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이후에도 한번씩 아버지 쉬는 날 가족끼리 우리 삼형제가 먹을 간단한 과자 몇봉지와 음료를 준비해서 집 뒤에 있는 산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자연과 함께 가족소풍을 즐기곤 했다.

 

지금은 그것을 얘기하고 추억할 분이 어머니 밖에 없지만 그 당시 아버지가 느꼈을 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과 터프한 현실속에서 위안을 가지고 싶었던 휴식중의 하나가 바로 텐트를 가지고 떠나는 가족과의 소박한 소풍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 마흔이 넘어버린 나에게는 아직 텐트가 없다.

우리 아이가 더 크고 자라서 나중에 어릴적 추억에 대한 경험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이번 여름휴가는 자연으로 떠나는 소풍을 계획하고 실행해보는것도 좋은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텐트와 함께 말이다.

 

2013년 5월 8일 수요일 오후 1시 44분 양 재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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