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블루스 24

1.

명절이 되면 항상 좋을것만 같던 기분이 나빴다가 좋았가가 하며 변덕을 부린다.

물론 나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환경들이 관계의 용광로속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명절, 엄마와 동생들을 보러 아들과 함께 양산에 다녀왔다. 하지만 아내는

함께하지 못했다. 하필 명절 전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그동안 집에서 놀고 있던 사람이 하필 그날 아르바이트라니...무선 일이고...

나중에 이야기를 듣다보니 지난번 막내 동생과의 전화통화이후 우리 시댁

식구들과 더 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내는 그것을 계속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계속 그렇게 지내야할지 아니면 어느 시점에서는 화해할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야할지 고민이다.

 

 

2.

명절 다음날 처남과 그의 가족들이 우리집에 인사를 왔다. 

아직 조카딸이 어려 이제 3살정도 밖에 안되어 있는 내내 아이의 재롱만

보다가 시간이 가 버렸다.

아내가 이것 저것 챙겨 주면서 내가 준 5만원 용돈에 더해 아이 용돈으로

또 5만원을 주었다. 순간 그렇게 지독하던 구두쇠같던 사람이 이런 자비를...

더구나 우리 시가댁 조카들한테는 그렇게 호의적으로 용돈 챙겨주지도 않던

사람이 이렇게 할수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이자 살짝 마음이 상했다.

 

더우기 이미 알바하던 떡집에서 가져온 떡을 우리한테는 주지도 안더니

처남 식구들을 위해 몽땅 싸주려한다고 한다.

그래서 같이 먹는게 낳지 않냐고 당장 내어올것을 요구했고 억지로 아내는

등떠밀듯이 떡을 가져오고 남은 떡은 모두 처남식구들에게 싸주었다.

내심 더 마음이 상했지만 꾹 참기로 했다.

 

그런데 역시 참기로 했던것은 언젠가는 표출이 될수 밖에 없었다.

저녁을 먹다가 아내와 약간 말다툼을 하다가 오늘 낮에 마음 상했던

떡과 관련한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 역시 반대급부적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우리 시댁과 동생들에 대해 나쁜 말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또 한번의 고성이 오고가고 나의 방으로 들어와 책상앞에 앉았다.

 

아내의 지속되는 잔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아들과 함께 근처 맥주집으로 가서 잠시 피신을 했다.

아들과 축구 및 군대 이야기를 하며 화제를 바꾸었다.

2차는 노래방을 가서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집으로 왔다.

아내가 수그러 들었나 싶었더니 또 한번 나의 감정에

불을 지르듯 공습을 한다.

 

어쩔수 없이 나도 한꼭지의 말꼬리를 자르고 나의

독설을 퍼붓고 각자의 방에서 각방을 쓰기게 되었다.

 

 

3.

나의 공부방은 평소 가스비를 절약하기위해 보일러를 틀지않아 추웠다.

전기장판을 꺼내었다.

그런데 이 전기 장판을 보니 갑자기 옛날의 추억이 소환되었다.

아이가 2살때인가 일반 주택의 단칸방에서 셋방살이를 할때에

보일러가 갑자기 고장나 밤늦게 이마트에서 가서 샀던 전기장판이

아직 멀쩡하게 있다니... 

아마도 20년은 족히 되었지만 콘센트를 꼽고 스위치를 올리니 금새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가 전해지듯 아내에 대한 미운 감정이 옛추억과 함께 눈녹듯 녹았다.

물건을 통해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움직일수도 있음을 깨닫았다.

 

아침일찍 집을 나서 회사일을 하고 들어왔다. 저녁을 그냥 밖에서 먹고

들어갈까 하다가 그냥 집에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해서 들어왔다.

 

7시 반이 다되어 가는 시간이라 이미 저녁을 먹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가 저녁을 차리고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설때 나의 후각을 

자극하는 국냄새와 반찬 냄새가 나를 더 무장해제하게 만들었다.

아들역시 나를 반기며 나의 존재가 이 집의 소중한 부분임을 보여주었다.

 

아직 아내와 완전한 화해를 한건 아니지만 아마 이번 명절의 폭풍도

그렇게 수습이 되어 지나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