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진정한 부에 대한 단상

Stage2 2020. 1. 20.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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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부란 무엇일까.

돈과 소유하는것이 많을 수록 그 부가 높게 측정되는 것일까.

아니면 마음이 풍요롭고 나를 둘러싼 관계가 풍성할때 진정한 부라고 말할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말할수 있을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물어본다면 전자보다는 후자쪽을 진정한 부로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자로 동의할 경우 좀 속물 근성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렇게 대답할 것이고 남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는 교조적 '진정한 부'이다.

 

반면 다른 한편은 현실적 '진정한 부'라고 할 수 있다. 엄연히 전자의 교과서적 답변과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진정한 부'는-물론 소수의 보다 도덕적 윤리적 이들도 있지만-경제적인 부분에 방점을 두고 살아간다.

 

누군가가 아파트나 건물을 사서 엄청난 수익을 남기며 단번에 부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질투심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까지도 들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뭐했을까 라고 자책도 하기도 하고 노동의 댓가보다 자본의 댓가가 너무나 크고 가치있고 의미있게 다가오게 된다. 사회구조적 시스템도 문제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한 몫 한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을 더욱 힘빠지게 하는 것은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이다.

요즘 대부분의 한국인은 끼니를 못먹는 절대적 빈곤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 그것도 재테크를 잘해서 돈을 번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자신이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으로 오는 박탈감이 더 크고 아리고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자신도 아직 남은 자본수익의 과실을 따먹기 위해 재테크에 몰두한다.

 

그럼 자신도 그 재테크로 훌륭한 삶을 영위하고 진정한 부를 이룰수 있을까.

올해 아프리카 수단 톤즈에서 의사로서 사역을 하다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의 10주기이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은 한국에는 없는게 없지만 수단은 있는게 없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풍요롭게 살면서도 그 사소한 것에 감사할 줄 모른다고 했다.

한번은 이태석 신부가 수단 현지인을 진찰하고 하루 3끼 밥먹고 약을 먹으라고 했는데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하루 1끼를 먹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현재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자족할 수 있는 삶이 행복하다고 하지만 나 역시 그런 행복를 바라는지 의문이다.

종국에는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게 우리 인생인데 여전히 소유와 비움사이에 갈등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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