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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좋은 일들

Stage2 2015. 8. 23.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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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아침 라디오 북카페에서 소개된 시

참 마음을 여리게 한다.

내가 생각하는 돌아갈 본향을 연상케 하는 묘한 순간이자 모티브가 된다.

 

[시한편] 좋은 일들 (심보선)

http://ergosum94.egloos.com/158154

좋은 일들

심보선


내가 오늘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르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에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나의 심장이 구석구석의 실정맥 속으로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란
그러나 이 지상에 명료한 그림자는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고백하는 일에 보다 절제하련다

발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각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발췌 및 참고 : P.24~25, 눈앞에 없는 사람, 심보선시집, 문학과지성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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