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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201] 나를 바라보는 법 2021.05.22

Stage2 2021. 6. 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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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가면 많이 나오는 질문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것과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는 건 인생의 많은 일이 기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내 부모가 겪었고, 내 자녀들도 비슷한 어려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직장에 나가는 외벌이 남자들은 스스로 돈 버는 기계인가 한탄하고, 육아에 지친 전업주부들은 나 자신을 잃었다고 고백한다. 역할에 대한 강박이 클수록 책임감이 강한데, 역할에 충실하려다 보니 너무 지쳐 도망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내, 남편, 며느리, 딸, 부모로 사느라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잊었다 말하는 사람이 유독 많은 건 ‘우리’라는 주어를 ‘우리’만큼 많이 쓰는 민족이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 우리 남편, 우리나라, 우리 때는... 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문장은 이런 한국적 심리가 반영된 언어 습관이다.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역할이 바뀌는 과정에 놓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역할은 시간에 따라서 바뀐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자식 역할이 끝나고, 젊은 부모였던 자신이 노부모가 되는 것처럼 계속 순환된다. 아역으로 시작한 배우가 청춘의 역할을 거쳐, 중년의 어머니에서 노년의 할머니 역으로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매 순간 역할이 바뀔 뿐,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이다. 중요한 점은 바뀐 역할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바뀐 상황과 역할에 적응하지 못해 자기 연민에 빠지고 원망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 탓’은 일시적으로 기분을 낫게 만들지만, 더 크게 돌아오는 부메랑이 되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건 퇴직이나 자녀의 독립으로 역할을 잃어버리면 오롯이 나만 남는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 길을 잃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빈 둥지 증후군이나 은퇴 후 우울이 대표적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조화다. 가끔 풍경을 반영하는 창을 통해서 타인을 보고, 때때로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는 것이 인생의 균형감을 키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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