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보고싶은 다니엘 형님

Stage2 2019. 2. 1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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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된 책을 정리하다 우연히 다니엘 형님과의 영어 편지를 발견했다.

약 18년전 이메일을 쓰기시작하던 초창기에 주고받은 편지다.

나의 형편없는 그 당시 영어실력을 보며 이런 시절도 있었구나 하며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나보다 약 6살이 많았던 기억이 나는데 아주 순진하면서도 순수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고향은 미국 뉴욕 인근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했다. 

 

99년 졸업후 두번째 직장으로 전라도 익산시 황동면이라는 아주 외딴 시골에 옹기 및 전등를 제작하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난 그곳에서 전등을 만드는 "예광"이라는 벤처기업(그 당시 소기업들이 벤처기업으로 많이 등록함)에 이전 직장 동료의 인맥을 통해 취직을 하게 되었다.

아내와는 결혼한지 겨우 약 4개월만에 헤어져 살게 되었고, 마침 다니엘은 한국의 옹기에 반해 이곳에 오게 되었다. 다니엘은 당시 한국에 온지 약 5년이 넘었지만 한국어에 서툴렀고, 영어로 서로 소통하는게 더 편하게 생각되어 나와는 왠만하면 영어로 대화를 했다. 다니엘과 나 모두 거기선 서로 솔로였고, 일과가 끝이 나면 별 일이 없었던 시절이라 밤늦게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으며 나의 외국인과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약 2개월만에 내가 그 회사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만두는 바람에 헤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다니엘과 연락을 취하면서 서로의 근황을 이메일로 주고받으며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의 이메일계정이 Hotmail을 통해 주고 받았는데 어느순간 사용하지 않게 되자 이제는 더 이상 나의 계정과 그 당시 메일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Hard copy로 인쇄된 종이로만 몇장 남겨져 있으며 그것을 오늘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후 2010년 7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다니엘과 형수님 그리고 딸까지 함께 초대를 하고 부산 인근을 돌아보며 교류를 하였지만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우리집 방문이었고 이후론 연락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 몇번이고 그의 계정에 글을 남기고 했지만 다니엘은 그 페이스북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제 나도 그를 만나면 더욱 성숙된 모습으로 그리고 보다 나은 영어실력으로 그와 소통할 수 있다.

죽기전에 꼭 만나야할 사람 중에 한사람 바로 다니엘 형님이다. 보고싶다 다니엘 형님아!

 

정말 꼭 죽기전에는 반드시 만나고 싶은 소중한 내 젊은날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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