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독서

<빨강머리앤이 하는 말 > 을 읽고

Stage2 2021. 9. 1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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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이란 작가의 글을 한번 꼭 읽고 싶었다.

어제 토요일 도서관에 "축의 전환"(안타깝게 완독하지 못함 ㅜ)도서 반납을 위해 들렀다가 이책을 선택하였다.

2016년에 나온 도서라 벌써 올드한 느낌이 들었지만 글을 통해 본 삶의 무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다가온다.

빨강머리앤과 관련 작년에 나온 최근작인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어쩌면 영화로 말하면 그 시리즈 중 1탄에 해당한다.

 

이렇게 한권의 책에 집중하며 읽은지가 꽤 오랜만이어서 이번 주말의 시간들이 더 알차다.

에세이가 던져주는 삶의 이야기들이 나의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기때문에 좋았다.

 

작가의 나이가 나와 비슷한 또래라는 것 또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유년기의 친구관계, 대학시절과 연애담, 이후 회사생활과 작가로 등단하기까지의 일련의 삶이 여기에 녹아있다.

 

솔직히 '빨간머리 앤'이란 만화영화를 통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펼쳐놓을수 있었을까 하는 작가의 의지와 관점이 대단하다. 작가는 빨간머리 앤을 10번 이상 보았고 그에게 삶이 힘들고 지칠때마다 안식처가 되어준 소중한 반려견과도 같은 존재이다.

 

회사에서 느끼고 있는 나의 위기의식과 불안감 및 자존감, 가정에서 짊어지고 맞닥드리고 있는 자식문제와 아내와의 이런저런 갈등들이 결코 나만이 당면한 문제는 아님을 자각한다.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강도나 형태가 다를 뿐 유사한 문제로 힘들어 하고 절망하고 좌절하게 된다.

 

여러가지로 복잡한 현재의 나의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어준 소중한 문구들을 정리해 본다.

 

-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친구의 존재는 소설 <파이 이야기>에도 나온다. 망망대해ㅅ에서 커다란 뱅골 호랑이와 단둘이 작운 구조용 보트에 남게 된 소년을 언제 잡아먹을지 모르는 호랑이에게 이름('리처드 파커')을 붙이고 그를 친구로 만든다. 배가 극적으로 구조되어 호랑이와 헤어지기 직전, 소년은 그만 엉엉 울러버린다. 살아남았다는 감격 때문이 아니다. 그 작은 배엣, 일곱 달을 넘게 함께했던 리처드 파커가 뒤도 안 돌아보고 자신을 떠나버렸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았다는 감격보다 정들었던 친구가 자신에게 인사도 없이 떠나 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아이는 다시 한 번 상처 받는다. 인간은 그만큼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고도로 사회화된 존재인 것이다.  p.83

 

- "인간이 언제 위로받는 줄 알라? 재도 나처럼 힘들구나! 바로 비극의 보편성을 느낄때야." p.156

 

-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우리이며, 그것은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몫이다. 소설가 김훈이 말했다. 

"물고기가 낚시 바늘을 물지 않고 낚싯밥을 먹을 수는 없다."

모든 선택은 위험한 것이다. 그것이 선택의 본질이다. 샤르트르의 말처럼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 p.172

 

-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가 '해야'하는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좋아하력는 노력 그 자체가 아닐까. p.184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감의 인터뷰 중

    "제가 원해서 이 직업을 택한 건 아닙니다. 먹고 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경찰이 된 거예요..... 제가  이 일을 하는 건 유별한 소명의식 때문이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도움을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슬픔에 반응하는 우리 가가자의 시간표는 전부 다르다. 그것은 오직 나만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앤의 말이 맞다. 기운이 날것 같이 않고, 나게 하고 싶지도 않다면, 슬픈 채로 있는 게 낫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이고, 울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슬픔의 무게는 덜어내는 게 아니다. 흘러 넘쳐야 비로소 줄기 시작한다. 그래야 친구들이 다가오고, 함께 슬퍼할 수 있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에야 슬픔은 끝난다.  p.200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란 애니메이션 주인공은 한 소녀의 내면에 존재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등 다섯 개의 감정이다. 고향인 미네소타에서 낯선 동네인 샌프란시스코로 이사오면서 사춘기 소냐 '라일리'가 겪게 되는 복잡한 내면이 주인공인 것이다. 이사후 낯선 친구들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소녀가 겪는 압도적인 감정은 슬픔으로 뒤바뀐다. 소녀를 걱정한 '기쁜'은 '슬픔'을 튀어나오지 못하게 가둬버리려 한다. 하지만 슬픔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는 구조 신호라는 점에 주목한다.

 

- 결혼도 연애다. 아주아주 지루한 연애다. 우린 삶의 지루함을 즐겨야 한다. p.243

 

- 누군가의 성공 뒤엔 누군가의 실패가 있고, 누군가의 웃음 뒤엔 다른 사람의 눈물이 있다. 하지만 인생에 실패란 없다. 그것에서 배우기만 한다면 정말 그렇다. 성공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이지만,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인 실패도 있다.

나는 이제 거창한 미래의 목표는 세우지 않게 되엇다.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란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작고 소박한 하루하루.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나. 오늘도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조금씩, 한 발짞씩, 꾸준히······.

p.278

 

-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불행해지지 않는 것보다 행복해지는 쪽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젠 어쩌면 꼭 그런 게 아닐지 모른단 생각을 하게 됐다. 어쩌면 '행복'이 '행운'과 관련 있는말이 아닐까 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종종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가 아니라, '해야 하지만 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 말하게 된다. 앤과 함께 3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온 나는 이제 '결핍'을 채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어쩌면 '과잉'을 덜어내는 쪽이 아닐까란 생각도 한다. 나이에 따라 내려야 하는 처방이 다르다는 것도 알겠다. 살아보지 않은 나이를 예상한다는 건 어쩌면 부질없다는 것도.  p.321-322

 

- 사람들은 과거는 절대 바꿀 수 없다고,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과거도 바뀔 수 있다는 걸 이젠 안다. 정확히 말해 과거의 '의미'는 내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변한다. 나는 과거가 뒤바뀐 사람들을 줄곧 관찰해왔다. 성취가 실패로, 상처가 성숙으로, 행운이 불행으로, 분노가 기쁨으로 말이다.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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