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독서

이외수의 "벽오금학도"를 읽고

Stage2 2013. 1. 24. 22:47
반응형

작년 11월 말쯤 TV에서 우연찮게 혜민스님이 강원도 화천의 감성마을 촌장이신 이외수와의 인터뷰 중 벽오금학도라는 책에 대해 감동을 받았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몇년에 걸쳐 자신을 독방에서 교도소 철문으로 가두어 가며 쓴 소설이라기에 더욱 더 궁금함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으며 여지없이 나의 수첩에 독서목록으로 메모가 되었다.

 

작년 12월 초에 사놓고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고 미루다, 이틀전 화요일(1월22일) 부터 책을 잡게 되었다. 그런데 책을 잡고 읽기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내용이 고루하다는 생각을 했으나 점점 소설속의 주인공과 그 시대적 배경 그리고 작가의 소설속 주관과 생각들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거의 이틀만에 약400페이지나 되는 장편소설을 독파하였다. 그것도 회사에서 일을 다 하고 자투리 시간과 퇴근 후 집에서의 집중적인 읽기만을 통해서 말이다. 그만큼 나름 흡입력 있는 스토리와 구성을 하고 있었으리라.

 

작가는 이 작품에서 전쟁이후 한국 근현대사를 주인공 강은백의 아이에서 부터 어른에 이르는 성장기를 통해 시간적 시대적 흐름을 전개하였고, 그 주위의 인물을 통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암울했던 윗 세대들의 힘든 생활상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줄거리 중간중간에 그런 격동기 한국의 사회, 정치, 문화, 종교, 경제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견해와 독특한 필체를 담아내며 소설의 현실감과 역사적 연관성을 적절하게 잘 살려내고 있다.

 

그리고 더욱 인상적인 것은 각 인물들이 뱉어내는 지문들이 꽤나 멋있기도 하고 마음에 와닿는 명언중의 명언을 골라서 그 상황에  잘 우려내고 있다.

 

 예를 들면 " 길이 있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으로써 길이 생기는 것이라네", "몸은 새장속에 갇혀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파리를 더럽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파리는 만사물에 붙어서 우주의 안과 밖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곤충이라고 가르침니다.", "배가 지나가면 물결이 일고 바람이 지나가면 나뭇잎이 흔들린다고도 말해주지 않았던가.", "행복이란 관상이나 손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던가.", "견(見)하면서 삶을 살아 가지말고 관(觀)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라." 에서 나온 인물들의 대사처럼 말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처음 부터 이끌어온 줄거리와 분위기에서 알수 있듯이 보일듯 말듯한 신비주의적 결론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아마도 현실에서는 작가가 추구하는 그런 이상적인 세계는 과연 존재할 수 없을 것이지만, 그 현실속에서도 우리가 꿈꾸고 생각하는 마음속의 보이지 않는 절대적 선의 가치와 같은 무릉도원의 이상향은 현실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마음에 달려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현실에 살고 있는 인간은 그사람이 아무리 순수한 완벽함을 갖춘 철인이라 하더라도 절대 도덕적, 윤리적으로 완벽할 수 없으나 그 완벽함이라는 이상향을 위해 그 인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보다 낳은 자신으로 가꾸고 추구해나가야 한다는 암시를 주는것 처럼 말이다.

 

소설에서는 이러한 선세계를 '오학동 마을'로 부르며 '편재'라는 개념을 새롭게 고안해 낸다. 편재의 사전적 의미는 '널리 퍼져 있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선 이를 보다 극적이고 포괄적 상상력을 연결하여 아주 아름답고 신비러운 체험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즉 모든것들 속에 자신이 들어 있고 자신이 추구하는 선과 아름다움이 자신과 함께 합일이 되는 그래서 그 어떤 것과도 편재되어도 마치 모태속에 들어 앉아 있을 때 처럼 행복하고 안온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바람이 될 수도 있고, 물결이 될 수도 있고 이슬도 될 수도 있고 햇빛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태양이 될 수도 있고 하늘이 될 수도 있고, 먼지가 될 수도 있고 우주가 될 수도 있다.

 

읽는 내내 작가가 풀어내고 있는 단어단어 마다 작가의 기저에 깔려있고 내면에 엉커있던 실타래를 풀어내며 쓸만한 옷감으로 만들고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입을만한 옷으로 재 탄생하는 각고의 고통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92년 당시 작가에게 제2전성기를 가져다 주며 독자들에게 120만부나 팔리며 인기를 얻을 수 밖에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늦게나마 이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하며 다른 지인들에게도 기회가 되면 일독을 권하리라.

 

2013년 1월 24일 목요일 오후 10시 47분 양 재 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