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타산지석을 생각하다

Stage2 2018. 9. 9. 00:19
반응형

축구를 통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보면 파악되는 개개인의 인격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속한 축구 클럽은 교회에 소속된 단체이기에 그 이념이 전도에 목적이 있으며 교회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신앙심이 깊고 독실할수록 그 사람들의 주장이나 말은 날카롭고 너무 강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성경적 신앙적 주장이나 말이 아닌 축구에 관해서도 그렇다. 특히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최근 축구경기에서 수비 포지션을 맡다가 뒤통수를 맞듯 황당한 경험을 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신앙심이 독실한 형이 짜증과 화가 썩인 언성으로 수비지시를 하며 나의 행동에 제약을 거는 것이 아닌가.

오늘도 함께 축구를 하던 중 평소에는 심판말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하며 아무소리 말라던 형이 오늘은 심판에게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얘기를 수없이 하며 상대팀 편을 드는 너무나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또한 식사후 다른 동료와 그 형간에 내부 경쟁팀과 치룬 시합 스코어를 말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본인이 말한 스코어가 맞다고 우긴다.

 

모든것을 다 일반화 하면 안되겠지만 이런 가정은 대부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할때 나름의 타당성이 있다.

 

기독교적 믿음은 예수님을 메시아로한 절대적이고 일원론적인 진리이기에 절대 진리는 둘이 될수 없음은 사실이다. 다신론적 다원주의는 허용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종교적으로 생각하면 수긍할 수 있지만 이런 절대적인 가치관이 차칫하면 본인의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확대되어 그렇게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오로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살고 있는 본인이 누구보다도 옳고 정직하고 합당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과 언행은 틀리지 않는다는 절대오류를 본인 자신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 기독교에 대한 나의 신앙심을 쉽게 올인할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면에선 내 게으른 믿음생활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은 말이기도 하다.

 

타인을 통해 나를 바라보듯 나 역시 누군가에게 보인 그런자가 아니었나를 생각해 보는 타산지석의 기회가 되어야 겠다.

 

2018. 9. 9 새벽 0시 13분 가을 문턱에서

반응형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생과의 관계 회복  (0) 2018.09.27
아래세대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기  (0) 2018.09.17
회사의 이모저모  (0) 2018.09.05
변화에 적응하기  (0) 2018.09.02
건강한 육제에 건강한 정신-목디스크 시술  (0) 2018.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