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여자, 그 아내라는 사람

Stage2 2017. 5. 2.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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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특징을 세가지 단어로 표현하자면 과거에 집착하고, 비교에 능하며, 그로인해 투기심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항을 알면서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내와 사이좋게 싸우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임을 오늘도 느끼게 된 하루다.

 

어제 어머님댁에 갔다와서 아내가 나에게 또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어머니에 대한 나의 태도가 자신에게 대한 태도와 다르다는 이유였다.

아내는 어머니와 동일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하며 시시콜콜 나에게 동일한 잣대로 자신과 어머니를 대하라고 한다.

효의 대상이자 존경의 대상인 부모와 동반자이자 애정의 대상인 아내는 기본적으로 사랑해야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는 같으나 엄연히 그 격이 다른 대상임을 아내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격이 다르다는 것이 인격적인 차별이나 덜 사랑하거나 덜 책임지기 위한 문제가 아님이 분명함에도 그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게 되면 아내는 발끈하며 화를 내고 나에게 더욱 과거의 시집살이의 힘든시절을 끄집어 내어 서로간의 말 다툼이 벌어 지곤 한다.

며칠 전에도 아침에 출근할때 아내의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나니 이제 이런 아내와의 다툼이 너무나 일상이 되고 있다.

솔직히 싸우고 나면 왜 싸웠는지 금새 잊어버리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더 싸우는 이유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싸운 이유가 머리속에 각인된다면 동일한 것들로 다시 싸우지 않게 될테니까.

그럼에도 자꾸 싸우는 우리 부부의 다툼의 원인은 아마도 아주 사소한 문제임은 틀림이 없다.

물론 내가 더 아내에게 긍정하고 수긍하고 과거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진지하게 받아주고 장난기 없이 진정성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 해도 이제는 거의 나의 아내와 나에 대한 관계에 대한 여백이 너무나 좁혀져 있어서 그것을 서로 이해해주고 그대로 인정해줄 여백이 필요하다.

 

또 다른 싸움의 원인은 아마도 경제적 관념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이다.

나는 미래와 노후를 준비하되 내게 주어진 현재 이 순간을 잘 살아내고 즐기고 마음껏 누려야하는 주의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내가 벌고 있는 소득과 비례해서 어느정도는 풍족하게 소비를 하고 친지들과 친구들로 부터 너무 구두세라는 인상을 심어주지 않고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때로는 어느정도 자선도 하면서 말이다.

반면, 아내는 미래를 준비하고 노후를 대비하는 것이 최고의 우선으로서 다른 어떤것 보다도 돈을 모으는데 집중을 하고 있다. 지금은 조금 고통스럽지만 미래의 노후를 위해 철저하게 아끼고 또 아끼고 하는 그런 모습속에 고마움 보다는 악착같고 친지들과 친구들로 부터 인심을 잃으며 주변인과의 관계가 전혀 정상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안타까운것은 미래의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돈도 중요하지만 경제력 이외의 취미나 사회생활에서의 차지하는 자신의 삶을 고려해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살림을 잘 하고 헛투른곳에 돈을 쓰지않는 절약정신이 아주 철저한 알뜰 살림꾼임은 분명하지만 그 도가 너무나 지나쳐서 지금까지 나와 살아오면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갈등의 원인이 되어 오고 있다.

 

정리를 하자면 아내와의 갈등의 원인은 하나는 시댁문제 또 다른 하나는 경제적 관념의 차이의 문제로 요약된다.

 

어떻게 하면 이런 갈등을 없앨수 있을까.

아내가 가끔 부부갈등으로 인한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자고 한다.

그것도 TV에서 무료로 상담해주고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말이다.

나는 그렇게까지 심각하냐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결코 그렇게 사소한 문제는 아님은 분명하다.

 

나 역시 더 이상 이런 상황속에 인내해 나가는 것이 때론 힘들게 느껴지고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의 나이인 아들 앞에서 그런 유치한 다툼을 한다는 것이 너무 아이 앞에서 할 수 없는 행동임은 틀림이 없다.

 

참고 참고 또 참는 것이 과연 능사는 아닐 것 같다.

요즘 새롭게 유행하는 '졸혼'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머리속에 맴돈다.

고등학교 모임을 통해 알게된 서로 별거를 하는 동기생들을 보면서 나는 그러지 않고 있으니 다행이다라고 면피 해 보지만 그렇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것이고 나다운 삶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오늘 우연히 읽게된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글을 보게되었다.

마흔이 넘어서도 사십춘기를 겪으며 가정과 직장에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진정한 삶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나의 현재가 그런 사춘기에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진정 가정과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진정한 나다운 삶을 더 갈구하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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